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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루터교 성지 성 토마스교회 [독일 슈투트가르트 한 달 살이] 13

햇살가득한날 2026. 10. 1. 20:29

스트라스부르 루터교 성지 성 토마스교회 [독일 슈투트가르트 한 달 살이] 13

스트라스부르 쁘띠프랑스에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가는 길목에 루터교 성지 성 토마스교회가 있다
스트라스부르 하면 대성당이 유명하지만 독일 종교 역사적으로는 성 토마스 교회도 유명한 곳이었다

성 토마스 교회는 알자스 지역 루터교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역사적인 개신교 교회로, 흔히 '알자스 개신교의 대성당'이라 불린다고 한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가던 길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있던 성 토마스교회

대성당으로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성 토마스 교회로 향했다
알자스의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성 토마스 교회는 외관도 아름다웠다

우연히 들렀던 교회는 들어가 보니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곳이었다

성 토마스 교회의 내부는
홀 교회(Hallenkirche) 구조로(중앙 네이브와 측면 아일의 높이가 같은 후기 고딕 양식의 홀 교회 구조) 건축되어 있어서 내부가 한층 아름답고 교회라는 공간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 살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천장구조와 기둥들이 어우러진 건축 특성이 보이는 성 토마스교회

성 토마스교회의 파이프오르간

사진에 보이는 것은 성 토마스 교회의 파이프오르간의 본체 원형 반주대 라고한다
모차르트와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연주했던 실버만 (질버만) (Silbermann) 파이프 오르간이다

바닥에 따로 분리 전시된 이유는 세월이 흐르며 성당 위층의 메인 오르간이 신형으로 개조, 보수되었지만…
모차르트가 연주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원래의 콘솔(건반부)만 따로 분리해 성당 본당에 보존 및 전시해 두고 있었다

오르간 본체의 오른쪽에는 모차르트 등신대가 왼쪽에는 슈바이처 박사의 등신대가 놓여 있었다

모차르트와의 인연: 모차르트는 1778년 10월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했을 때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간을 직접 연주하고 그 아름다운 음색에 크게 감동했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연주대의 열린 문 안 쪽에 부착된 서류 중 하나는 1778
년 10월 26일 모차르트가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이곳 스트라스부르 성 토마스 교회의 질버만 오르 간을 연주했다] 고 적어 보낸 친필 편지의 복사본이라고 한다

음악가인 모차르트의 등신대가 세워져 있는 이유가 있었군…^^

슈바이처 박사의 등신대는 왜 이곳에 있을까???
슈바이처와의 인연: 슈바이처 박사 역시 이 교회에서 오랜 기간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며 바흐의 오르간 작 품들을 연주하고 보존하는데 힘썼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의사 슈바이처 박사가 성 토 마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다니..!!!

모차르트와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연주했던 실버만 (질버만 (Silbermann) 파이프 오르간
역사를 알고 나서보니 더 웅장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성 토마스교회의 성가대 파이프 오르간이다
연주자분께서 아름다운 곳을 연주하고 계셨다
이 오르간도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1762년 오르간 제작자 루이 뒤부아(Louis Dubois)
가 처음 제작한 역사 깊은 오르간으로, 이후 여러 차례 보수 및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목사님 강대상 뒤쪽으로도 좌석 의자가 많이 놓여 있었다
성가대 좌석이라고 한다

교회 정면에 크게 자리 잡은 조각상은 18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군사 영웅인 모리스 드 작스 원수(Maréchal de Saxe,1696~1750)의 대형 묘비 조각상 (Mausoleum)이다
프랑스 당대 최고의 조각가 장밥티스트 피갈 (Jean-Baptiste Pigalle) 이 20년에 걸쳐 완성한 18세기 프랑스 조각 예술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의 위대한 군사 영웅이 어떻게 루터교 교회 정면에 묘비를 세울 수 있었을까??


1. 개신교(루터교) 신자였던 영웅 모리스 드 작스 원수는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 밑에서 폰테 누아 전투 등 수많은 승리를 이끈 국보급 장군이었지만, 개신교(루터교) 신자였습니다.
당시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에서는 개신교도가 왕실 묘지인 생드니 대성당이 나 일반 가톨릭 성당에 묻히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2. 루이 15세의 명령과 장소 선정
루이 15세는 국가적 영웅인 그를 국장으로 치러주고 싶어 했고, 그 결과 프랑스 영토 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루터교 성당이었던 스트라스부르의 성 토마스 교회를 매장 장소로 선택했습니다.
국왕의 명으로 성당 안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Choir(성가대석 깊은 중앙 정면) 자리에 이 거대한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3. 개신교 교호의 특성 개신교(루터교) 교회는 가톨릭 성당과 달리 화려한 성상이나 복잡한 제단 장식을 따로 두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웅장한 조각상이 교회 정면 중앙을 자연스럽게 채우며 성 토마스 교회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조각 작품에 대한 설명

중앙의 당당한 인물: 모리스 드 작 스 원수 본인으로,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걸어 내려오는 모습

오른쪽 관을 열고 있는 해골: '죽음 (Death)'을 의인화한 모습으로, 모리스 원수를 끌어넣기 위해 열린 관 뚜껑을 잡고 있다

울며 저지하는 여인: 프랑스를 의인화한 '프랑스 여신(La France)'으로, 원수의 죽음을 슬퍼하며 한 손으로는 원수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해골(죽음)을 막아 서려하고 있다

주변의 동물과 깃발: 사자, 독수리, 부러진 깃발 등은 그가 전투에서 물리친 적국들+영국,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을 상징한다

사진 속 흉상의 인물은 19세기 스트라 스부르의 대표적인 개신교(루터교) 신학자이자 교육자인 장프레데리크 브뤼슈(Jean-Frédéric Bruch 1792~1874)이다
신학 교수 및 알자스 루터교 지도자였다고 한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알자스 지역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 루터교회의 총회장 (President of the Directory)
을 역임했다
교육 개혁: 신학 교육뿐만 아니라 알자스 지역의 공교육 및 초, 중등 교육 체계를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19세기 프랑스-독일 간의 정치적, 문화적 혼란기 속에서 스트라스부르 개신교의 중심축 역할을 한 거목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를 기리기 위해 그가 평생 헌신했던 성 토마스 교회 내부에 이 기념 흉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크리스토프 기욤 코흐 기념비

유럽 대표 법학자, 역사학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법과 유럽 외교사를 가르쳤다
훗날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재상 메테르니히(Metternich)를 비롯해 유럽 각국의 수많은 외교관과 정치가들을 배출해 낸 스승이라고 한다

정치가 및 개신교 지도자:프랑스혁명 당시 국민입법의회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스트라스부르의 루터교 및 교육 기관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라고 한다

벽면에 있는 석판들은 중세부터 근세기에 이르기까지 성 토마스 교회 내부 무덤에 안치되었던 사제, 귀족, 그리고 주요 인사들의 바닥 묘비들이라고 한다

본래 이 석판들은 성당 바닥 무덤 위에 눕혀져 있던 '바닥 묘비덮개'였다고 한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면서 정교한 인물 조각과 라틴어 글귀가 마모되자, 성당을 보존, 보수하는 과정에서 묘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해 벽면에 세우거나 다듬어 붙여 놓은 것이라고 한다

스트라스부르 성 토마스 교회 내부에 전시된 과거의 기계식 시계 장치(Clock movement)이다

정교한 톱니바퀴와 철제 프레임, 탈진기 등으로 이루어진 이 장치는 과거 성당이나 시계탑에서 시간을 측정하고 거대한 시곗바늘이나 종을 구동하기 위해 사용하던 전통적인 타워 시계의 핵심 작동장치였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의 시간을 함께 기록해 온 정교한 기계 유물을 눈앞에서 볼 수 있어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기념비는 18세기 스트라스부르 대학 교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요한 다니엘 셰플린(Johann Daniel Schopflin, 1694~1771)의 추모기념비이다

요한 다니엘 셰플린

유럽 대표 역사학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역사관으로 활동하며, 알자스 지역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명작 《알자티아 일루스트라타(Alsatia lllustrata)》를 집필한 거장이다
문화유산 기증자: 그가 평생 수집 한 방대한 도서, 고문서, 고고학 유물 컬렉션은 훗날 스트라스부르 시립 도서관과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고 한다

9세기 스트라스부르의 주교였던 아델로크 주교(Bishop Adeloch, 817~822년 재임)의 석관

이 석관은 주교가 사망한 직후가 아니라, 12세기(1130년경)에 교회의 수도사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정교하게 제작한 로마네스크 미술의 걸작이라고 한다

아델로크 주교

아델로크 주교는 신성로마제국 루이 1세(유순왕 루이)의 스승이었으며, 820 년경 화재로 파괴되었던 성 토마스 교회를 처음으로 다시 크게 재건하고 학교를 세운 인물이다
교회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라 이 교회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사자 받침
다소 귀여운 얼굴의 사자 네 마리가 석관 바닥을 받치고 있다

사실 호랑이나 고양이 아닐까 했는데 사자라고 한다 🥰

이 벽면은 성토마스 교회'라는 이름의 계기가 된 성경 속 장면과, 과거 성당에 안치되었던 귀족들의 묘비석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문 위쪽의 반원조각은
성경 속 명장면으로 부활한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 토마스에게 "내 손을 보고 내 옆구리에 손을 대어 보라"며 직접 상처를 확인시켜 주시는 장면이다
이교회의 수호성인이 바로 성 토마스이기 때문에, 교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핵심 조각 중 하나 라고한다

대천사 미카엘(Saint Michael)의 프레스코 벽화

15세기 중세 후기에 그려진 수묵, 채색 벽화로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 시절에 제작된 작품이 교회 내부에 그대로 보존되어 내려오는 귀한 작품 중 하나이다

개인 기도공간
방문객이 개인 기도 제목이나 소원, 방명록을 적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창문 사이 벽면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Crucifixion)를 그린 중세 시대의 프레스코 벽화이다
벽화를 보며 기도를 드리며 예수의 고난과 사랑을 묵상하도록 조성된 공간인 듯했다

주일(일요일) 예배
프랑스어 예배: 오전 10:30
독일어 예배: 오전 09:15
정오 기도회 (월요일 ~ 토요일)
시간: 12:10~ 12:30 (20분간)
내용: 말씀, 오르간 연주, 침묵(묵상)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3개 언어로 동일 내용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성 토마스 개신교 교회 (Eglise protestante Saint-Thomas)

문화유산 (PATRIMOINE)
7세기: 이곳에 최초의 목조 예배당 이 지어졌습니다.
12세기말: 석조 건물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청 시 가이드 투어 가능 (-visite guidée sur demande-)
1400년의 기독교 역사, 그중
500년의 개신교 역사

문화 행사

(MANIFESTATIONS)
음악회/ 콘서트(Concerts)
전시회(Expositions)
강연 / 세미나 (Conférences)
공연 (Spectacles)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가는 길에 우연히 들렀던
성 토마스 교회
정말 우연히 들렀던 성 토마스교회는 루터교 교회의 박물관과 같은 곳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미리 알고 가서 봤으면 더 좋은 관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곳이었다